박선영 · 성찬경 · 강홍준, 내면의 소음 끝에서 완성한 <스트라빈스키>

누군가는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소음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한다. 예술가들은 마치 체스판 위에서 다음 수를 고민하듯 끊임없는 선택과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그렇게 정답 없는 창작의 길 위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면서도, 끝내 자신만의 예술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뮤지컬 <스트라빈스키>는 위대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삶을 통해 예술가가 마주하는 고독과 갈등, 그리고 창작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그려낸다.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에서 이어져 온 이야기는 이번 작품에서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들의 시간을 다시 무대 위에 펼쳐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그의 내면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존재 ‘슘’을 연기한 배우 박선영, 그리고 네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세계를 완성한 피아니스트 성찬경, 강홍준을 만나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와 무대 위에서 마주한 특별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햇살이 따사로운 여름, 처음 만나 뵙게 된 박선영 배우님, 성찬경, 강홍준 피아니스트님 모두 반갑습니다. 공연이 막 시작된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피아니스트 강홍준 (이하 강홍준) | 낮에는 연습하면서 공연 준비에 집중하고, 저녁에는 무대에 올라 공연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연습 기간에는 매일 피아노를 치며 감각을 유지하려고 했었는데,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는 백건과 흑건 역할을 번갈아 맡고 있다 보니 공연 전날이나 당일에 그날 맡은 역할에 맞춰 한 번 더 피아노를 치며 감각과 감정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배우 박선영 (이하 박선영) |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는 시간 날 때마다 대본을 다시 보며 역할에 더 몰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공연과 함께 준비 중인 뮤지컬 ‘소년의 초상’ 연습도 병행하고 있으며, 자기 전에는 도라지청을 꼭 챙겨 먹는 등 컨디션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성찬경 (이하 성찬경) | 무대에 서는 만큼 더 멋진 모습으로 관객들께 보여드리기 위해 체중 관리와 식단 관리도 하면서 멋진 무대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 스트라빈스키, 화음을 맞추다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는데요. 뮤지컬 <스트라빈스키>와의 첫 만남은 어떠셨는지, 또 피아노 네 대가 등장하는 구성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선영 | 초연 때 <스트라빈스키>를 관람했었는데, 이전에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에서 연기하며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품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이고르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이해됐고, 작품 자체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무대 위에 놓인 두 대의 피아노를 보고는 ‘설마 저걸 직접 연주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가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고, 처음에는 잠깐 연주하는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약 4분 동안 이어지는 연주를 보며 이 작품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연습, 그리고 남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홍준 | 초연 때 처음 제안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해서 작품에 대해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작품의 마지막에 배우 네 명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배우들이니까 그렇게 어려운 연주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악보를 받아보니 생각보다 난이도가 상당하더라고요. 배우들이 피아니스트가 아닌 만큼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함께 연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점 ‘이건 정말 해낼 수 있겠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드레스 리허설과 공연에서 실제 연주를 봤을 때는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많은 노력과 연습이 담긴 무대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찬경 | 저는 이 작품의 창작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보니, 2022년 처음 기획 회의를 했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당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투 피아노 콘셉트’의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임동균 대표님(現 쇼플레이 대표)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배우들까지 함께해 네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를 바로 말씀해 주셨어요. 그 순간 대표님의 직관과 추진력에 정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당시에는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아이디어가 실제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 중요한 장면이 됐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아요.

각 캐릭터 및 피아니스트 두 분이 맡은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박선영 | 저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슘이라는 두 역할을 맡았는데요. 우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실존 인물인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모티브로 한 역할입니다. 극 중에서는 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창작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무대 위에 풀어내고 있어요. 반면 ‘슘’은 ‘소음’을 뜻하는 존재로, 이고르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이기도 하고, 그를 둘러싼 세상의 소음이기도 한데, 슘은 그런 모든 소음을 상징하는 인물로 때로는 이고르를 다그치고, 때로는 영감을 주며, 또 때로는 친구처럼 곁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강홍준 | 저는 박선영 배우님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슘을 나눠서 연기하셨던 것처럼, 흑건과 백건을 맡고 있습니다. 성찬경 감독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빌려 설명하자면, 백건은 음악의 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입니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현악기처럼 음악의 기본 틀을 만들어주는 존재이고요. 반대로 흑건은 그 위를 조금 더 화려하게 장식해 주면서 때로는 받쳐주는 역할입니다. 관악기나 금관악기, 혹은 타악기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설명을 들으면서 두 역할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백건과 흑건은 단순히 다른 역할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성찬경 | 저는 음악감독과 백건을 맡고 있습니다. 백건으로서 배우들의 호흡과 공연 전체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성찬경 피아니스트 단독 질문) 시리즈 3부작을 제작사가 처음부터 기획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넘버도 그걸 고려해서 쓰게 되었는지, 아니면 일단 쓰고 그다음 시리즈를 쓰는 형태였는지 궁금합니다.

성찬경 | 일단 <니진스키>가 2019년에 초연됐고, <디아길레프>가 2022년에 초연됐고, <스트라빈스키>가 작년에 초연됐는데요. 쓰인 순서도 말씀드린 그 순서대로 하나하나 차례차례 이어져 왔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스트라빈스키>에서는 앞선 작품들인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의 음악과 넘버들이 가장 많이 차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트라빈스키>라는 작품이 비로소 이 세 작품의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선영 배우 단독 질문) 1인 2역을 모두 맡게 되셨는데요. 스트라빈스키와 슘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며,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선영 | 제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슘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호흡’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연습 과정에서 연출님을 비롯해 배우분들에게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들었는데, 그때마다 공통으로 “자기만의 호흡이 있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실제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호흡이 다르더라고요. 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실 때는 느리고 여유 있는 호흡이 있고,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는 훨씬 빠르고 가벼운 호흡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고르와 슘도 각자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다면 두 인물이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차이를 두기 위해서 가장 많이 신경 썼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헷갈리는 것’이었어요. 한 작품 안에서 두 인물을 계속 오가다 보니까 순간순간 제가 어떤 인물의 감정과 호흡으로 가야 하는지 구분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연습을 통해서 두 인물의 차이를 계속 찾아가려고 했고, 지금은 서로 다른 호흡을 가지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가 극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또한 원래 피아노를 연주하실 줄 아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선영 | 사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체르니 연습곡 이후로 그만두면서 오랫동안 피아노와 거리가 있었어요. 그러다 연극 <환상동화>를 하면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장면이 생겼고, 그때 다시 피아노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음 하나하나를 이해하면서 친 게 아니라 거의 머슬 메모리처럼 몸으로 외워서 연주했던 수준이었어요. 다음 음을 쳐야 하는 순간에 위치가 헷갈리면 그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였죠. (웃음)
그랬던 제가 이번 <스트라빈스키>를 하면서는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고 계속 연습했습니다. 연습하면서 피아노를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진 것 같아요.

발레뤼스 3부작에서 모두 스트라빈스키를 연기해 보셨는데 어떤 지점이 다른지와 세 스트라빈스키를 다 해본 소감은 어떠신가요?

박선영 |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에서의 스트라빈스키는 영광의 순간들을 그리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페트루슈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성취와 성공을 보여주고, 또 그 영광의 순간들 안에서 ‘봄의 제전’을 통해 무너지는 경험도 하게 되죠. 그리고 그런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며 성장해 가는 모습들이 그려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스트라빈스키를 바라봤을 때는 굉장히 역동적이고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활기차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에너지도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스트라빈스키>에서는 그런 영광의 순간들이 지나고 힘든 시기를 마주한 스트라빈스키를 연기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다 보니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작품이 없거나 기다리는 시간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스트라빈스키가 느꼈을 마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 스트라빈스키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상황이었겠구나.’ 하면서 인물을 바라보게 됐어요. 그래서 <니진스키>, <디아길레프>와 이번 <스트라빈스키>는 또 다른 결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 작품의 스트라빈스키를 다 해본 소감은, 짧게나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삶을 살아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그 인물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머리로는 될 수 있지만, 가슴으로 와닿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들과 행복한 여정들이 더해지면서, 이고르의 마음을 가슴으로 공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정말 새롭고, 너무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공통 질문) 흑건과 백건을 번갈아 연주하시는데 각각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강홍준 | 아까 말씀드렸듯이 백건은 어떻게 보면 전체 음악을 쭉 이끌어가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백건을 할 때는 극을 이끌어가는 넘버마다의 템포라든지, 아니면 배우들의 호흡 같은 부분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흑건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오롯이 백건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건이 이끌어가는 음악 안에서 제가 그 흐름을 잘 읽고, 그 위에 흑건이 장식처럼 자연스럽게 얹힐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백건이 생각하는 템포와 호흡에 맞춰서 흑건이 더해져야 음악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 부분을 1순위로 두고 이후에 배우들의 호흡까지 함께 살피면서 연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찬경 | 저도 강홍준 피아니스트와 거의 유사한데, 저는 백건만 연주합니다. 백건은 그날그날 달라지는 배우들의 세밀한 감정선을 잘 따라가 주는 게 중요한 것 같고 또 장면 안에서 잘 맞는 적절한 템포를 계속 유지하는 것, 그게 백건에게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흑건과 백건을 나눠서 연주하자.’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성찬경 | 아까 말씀드렸듯이 작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대표님께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형태의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작가님께서 단순히 ‘두 명의 피아니스트’라고 부르는 것보다, 작품의 콘셉트나 상징이 같이 묻어나는 네이밍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어요. 마침 저희 작품에서 체스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체스를 보면 흑과 백의 말이 나뉘어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착안해서 두 명의 피아니스트도 ‘흑건’과 ‘백건’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네 대의 피아노가 함께 만들어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선영 | 가장 어려웠던 건 ‘글리산도(glissando)’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 손등으로 칠 때는 너무 아프더라고요. 연습하다 보니까 피가 날 정도여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했는데, 여러 방법을 찾아보다가 손바닥으로 하면 조금 덜 아프다는 걸 알게 됐고 지금은 그 방법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조금씩 생긴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또 어려웠던 부분은 템포를 맞추는 일이었어요. 저희가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연주해 온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까, 각자의 연주보다 중요한 건 곡의 템포와 호흡을 함께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제 템포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빠르다고 할 때도 있고, 느리다고 할 때도 있어서,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면서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강홍준 | 처음 네 대의 피아노 장면을 준비했을 때는 생각보다 난이도가 꽤 높아서, ‘배우들이 연습하다 보면 조금 쉽게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다들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그걸 해내시더라고요. 그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제가 틀리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배우분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저도 그 노력에 더해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특히 그 장면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이자 온전히 연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저도 가장 중점을 두고 계속 연습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성찬경 | 당연히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도 어렵고, 또 강홍준 감독님과 함께 배우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제가 생각해 보면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역시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장면이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고, 관객분들이 엔딩에 대한 기대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부담이 매우 컸거든요. 하지만 그 부담은 해야만 하는, 그리고 제가 꼭 해내고 싶은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작업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막상 끝나고 나니까 그만큼 큰 보람이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동일한 악기인 피아노 네 대로 4중주곡을 만든다는 게 작곡가로서도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도전적인 작업이었어요. 또 곡을 만들 때 배우분들이 실제로 연주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마지막 장면인 만큼 화려하고 임팩트 있게 끝나야 하고, 그 안에서 시간을 채우고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장면을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과물을 플레이어분들이 정말 잘 수행해 주시고, 각자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셔서 저에게도 굉장히 보람 있고 특별한 작업이 된 것 같습니다.

#2. 스트라빈스키, 나만의 소리를 듣다

(피아니스트 공통 질문) <스트라빈스키>를 통해 피아니스트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실감을 하시는지 그리고 그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성찬경 | 초연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저희 피아니스트들의 캐스팅 스케줄을 따로 올리지 않았어요. 프리뷰 기간까지도 그렇게 진행했는데, 작품을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께서 정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셔서 그다음 주부터는 피아니스트들의 스케줄도 공개하게 됐는데, 그때 ‘아, 정말 많은 분이 피아니스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고 계시는구나.’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극장에 가서 캐스팅 보드에 있는 제 얼굴을 보면 아직도 조금 웃기고 부끄럽기도 해요. (웃음) 생각해 보면 제 주변에는 다른 창작진분들도 계시고, 연출진이나 여러 크리에이티브분들이 함께하고 있는데, 누군가 “너 캐스팅 보드에서 봤어.”라고 이야기해 주실 때마다 ‘아,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강홍준 | 저도 아직은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적응이 안 되긴 하는데 사실 작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자면, 피아니스트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살면서 그런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어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계속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수요가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고요. (웃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만큼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고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 순간이 아직도 잊지 못할,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찬경 피아니스트 단독 질문) <니진스키> – <디아길레프> – <스트라빈스키> 이외에도 다른 뮤지컬 작곡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뮤지컬 작곡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성찬경 | 저는 대학교 학부 때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시점에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재즈도 하고 싶고, 순수 음악도 하고 싶고, 국악이나 영화 음악, 뮤지컬까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러던 중 한예종 음악극창작과 석사 과정에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고, 입학하던 해에 뮤지컬 음악 조감독으로 데뷔하면서 ‘뮤지컬 음악을 하는 게 내 길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10년 넘게 뮤지컬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누구인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홍준 | 좋아하는 작곡가는 정말 많고 물론 스트라빈스키도 좋아하지만, 제가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기도 했고 저희 작품도 클래식 작곡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클래식 작곡가를 많이 좋아하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프랑스 작곡가인 ‘프란시스 풀랑크’인데 그 작곡가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프랑스 음악만의 선율이나 화성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드뷔시와 라벨도 되게 좋아하는데 풀랑크는 20세기 이후의 작곡가로서 조금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화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성감이 있어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풀랑크가 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있는데, 이번 <스트라빈스키>를 준비하면서도 그 작품이 많이 떠올랐어요. ‘이런 느낌의 음악도 있구나.’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런 이유로 풀랑크를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꼽았습니다.

성찬경 | 조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이번 작품의 작가이신 김정민 작가님입니다. (웃음) 시와 음악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를 떠올려 보면 음악은 시이고 시는 곧 음악이었습니다. 저는 시를 가장 잘 쓰는 사람, 가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 최고의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김정민 작가님이 최고의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박선영 배우 단독 질문) 작품 속 인물들이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고민하듯 배우님도 연기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선영 | 제가 예술가로서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순간은 오디션을 볼 때인 것 같아요. 한 번은 매체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연출님께서 “화를 머리끝까지 내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머리끝까지 화를 내보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까지 화를 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손이 떨릴 정도로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연출님께서 “화를 낸다고 해서 꼭 그렇게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방식으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당시에는 저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계산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배우는 결국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연출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그런 의미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저 역시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고, 그래서 오디션이라는 과정이 저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배우님께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과 인물을 만나오셨는데요. <스트라빈스키>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거나 성장했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선영 | 제가 <스트라빈스키>를 통해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포기하지 않는 것’인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어렵고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이건 내가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사실 많이 두려워하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이번 <스트라빈스키>에서 1인 2역으로, 심지어 2인극인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너무 두려웠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옆에서 많이 챙겨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그 힘을 받아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아, 내가 결국 포기하지 않고 해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건,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힘인 것 같습니다.

만약 실제 스트라빈스키를 만날 수 있다면, 한 명의 예술가로서 어떤 질문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성찬경 | “어떻게 평생 그렇게 곡을 쓸 수 있었나요? 죽는 날까지 창작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스트라빈스키가 거의 90세 가까이 살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평생 곡을 썼다는 게 너무 놀라웠거든요. 사실 예술가라면 젊은 시절에 큰 명성을 얻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처럼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왔잖아요. 그래서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한 명의 예술가로서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강홍준 | 저도 사실 성찬경 감독님이 말씀하신 부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스트라빈스키가 초반부터 정말 큰 성공을 거뒀잖아요. 그러면 그 성공을 계속 뛰어넘으려고 하기보다는, 어느 순간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왔다는 게 정말 궁금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은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니까, 저는 조금 다른 쪽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 그리고 니진스키의 관계가 실제로는 어땠는지가 궁금해요.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어땠을지,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있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박선영 | 저는 스트라빈스키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뮤지컬 <니진스키>에서 ‘페트루슈카’에 나오는 ‘빠라밤 빠라바라 밤’ 이 부분을 입으로 표현하거든요. 그러면 스트라빈스키도 그걸 입으로 뱉어봤을 텐데 어떤 식으로 음을 표현했을지 궁금해서, “선생님, 그 ‘빠라밤 빠라바라’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어떻게 입으로 표현하셨어요?”라고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웃음)

#3. 스트라빈스키, 하나의 선율이 되다

배우님과 피아니스트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넘버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박선영 | 저부터 얘기하면 저는 이고르일 때는 ‘슘’, 슘일 때는 ‘떠나도 돼’가 가장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고르와 슘이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앞에서부터 켜켜이 쌓여와요. 거기서 싸우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재미있게 가기도 하면서, 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짜 솔직해지는 순간이 이 넘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감정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냥 서로에게 자기 진심을 계속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넘버 자체로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성찬경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넘버는 ‘봄의 제전’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유일하게 쉴 수 있거든요. (웃음) 농담이고요. 실제로 저희가 숨을 고르고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구간이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봄의 제전’을 가장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이 넘버가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세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넘버이기 때문이에요. 같은 음악인데도 세 작품 안에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래서 이 세 작품의 세계관을 묶어주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봄의 제전’을 가장 좋아합니다.

강홍준 | 저는 초연 때랑 재연 때랑 조금 다른데요. 초연 때는 사실 ‘시작은 ‘도’’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때는 정말 단순하게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았거든요. 화성이나 멜로디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아서, 음악적인 이유로 가장 좋아했던 넘버였어요. 그런데 재연 때는 ‘슘’이라는 넘버가 다르게 다가왔어요. 물론 초연 때도 좋았는데, 재연 때 ‘슘’이라는 넘버 자체가 드라마상에서 이고르가 결심을 다시 하게 되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넘버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슘을 칠 때마다 저도 되게 벅차지는 거예요. 진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넘버가 끝나고 나면 가끔은 저도 이고르랑 슘을 보면서 웃게 되더라고요. ‘이 둘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초연 때는 음악적인 이유로 좋아했다면, 이번 재연에서는 조금 더 드라마적인 이유로 좋아하게 된 넘버인 것 같아요.

초연을 관람하신 분들도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될 만한 재연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박선영 | 초연 때는 피아노 뒤에 거울이 없었어요. 재연에서는 피아노 뒤에 거울이 딱 생겼단 말이에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이고르가 피아노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고, 이고르와 슘이 연주하는 손의 움직임도 거울을 통해서 더 잘 볼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이 가장 직관적으로 보이는 재연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홍준 | 저는 사실 선영 배우님이 아닐까 싶어요. 슘과 이고르를 번갈아 연기하는 걸 지금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흑건과 백건을 둘 다 하는데, 저는 그래도 악보가 있으니까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도움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배우는 사실 모든 걸 다 외워서 해야 하고, 그것도 2인극이다 보니까 결국 모든 대사를 가지고 가는 거잖아요. 게다가 슘을 할 때와 이고르를 할 때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여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내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부분이 관객분들에게도 큰 재미와 매력적인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찬경 | 4명의 이고르와 4명의 슘 모두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 가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보실 수 있으니 자주 보러 와주세요. (웃음)

관객분들이 이 극을 보고 난 뒤에 어떤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나서셨으면 하나요?

성찬경 | 저는 저희 마지막 넘버인 ‘여든 여덟 개의’에 나오는 대사인데, “몇 번을 이기고 지든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문장이 있어요. 저희 작품은 연주로 끝이 나지만, 무대에 울리는 마지막 대사는 바로 그 말이거든요. 저한테는 그 문장이 가장 큰 주제로 다가오는데 그 울림과 메시지가 관객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강홍준 | 저는 아까 ‘슘’ 넘버를 좋아했던 이유랑 똑같은데, 연주하고 있는 순간에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실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신다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런 위로를 받는 사람이라서, 관객분들도 그 감정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영 | 딛고 일어섰으면 좋겠어요. 저도 살면서 많이 무너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결국은 해야 하니까 다시 딛고 일어섰어요. 이고르도 그렇게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꾸 이름을 날릴 수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공연을 보시고 다시 딛고 일어설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