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은 지난 30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2024년 창작희곡 공모 수상작 3편을 발표했다. 공모 신청작 303편 중 대상작 1편과 우수상작 2편이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심사위원회는 총평으로 “포스트 드라마의 시대, 현실의 급박한 전개가 드라마를 압도하는 시대 속에 희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희곡이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아야기하는 언어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상식이 전도되고, 폭력이 농담같이 가해지고, 대화가 모욕받는 시대에, 인물들을 고집스럽게 대화로 연결 짓는, 대화의 연결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희곡들을 만났다”라고 남겼다.
대상작 <역행기(逆⾏記)>는 올해 낭독회와 작품 개발 과정을 거쳐 2026년 본공연으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8년째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잉여인간 ‘이슈타르’가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지하세계로 역행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지상의 여성이 시간과 공간을 역행하는 걸음에 신화적 외연을 부연해 급속도로 성장해 온 한국사회가 수 세대 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회적 문제를 드러낸다.
김주희 작가는 “<역행기(逆⾏記)>는 작가로서 가장 취약한 점과 마주하려고 했던 작품이자 글쓰기에 있어 제 모든 관심사가 보관된 비밀스러운 사물함”이라며 “망가지고, 뒤틀리고, 부서지고, 숨으려 드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은 늘 빛이 난다. <역행기(逆⾏記)>를 비롯해 앞으로도 글자들의 시작점에 그들을 제일 먼저 데려가겠다”라고 대상 수상 소감을 전했다.
우수상은 배해률 극작의 <야견들>과 윤지영 극작의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에게 돌아갔다. <야견들>은 1938년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뽀이’로 태어났지만 ‘모던걸’의 차림을 하고 사는 한 인간의 폭력 대항기를 그렸다.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는 ‘여수순천 10.19사건’을 모티브로 한 희곡은 “죽음을 목전에 둔 인물과 그의 어린 시절을 공존하는 시간으로 구성해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과거사를 다루는 작품의 상투형을 벗어내고 동화적인 방식으로 우리 시대에 절실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라는 평을 받았다.
배해률 작가는 시상식에서 “요즘 마주하는 세상 소식들이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와중에 희곡을 쓰다 보니 곁을 내어주는 이야기, 낯선 서로를 위해 기꺼이 싸우기로 하는 이야기들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야견들> 역시 그런 작품”이라며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에 당선된 오늘 이 순간을 동력 삼아 좋은 희곡이 무엇인지, 또 희곡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윤지영 작가는 “글 쓰는 작가의 숙명으로 불안이 시간의 흐름을 역류해 과거를 붙잡고 몇 달, 몇 년이고 그 장면에서 살아내는 때가 있었지만 아껴주신 모든 분의 지지와 사랑 덕분에 숨을 고르고 가라앉기보다 방향을 잡는 쪽을 택해왔다”라며 “2025년 속도를 조금 더 내보라고 연료를 넣어준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대상에는 3천만원, 우수상에는 각각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국내 현존하는 미발표 희곡 공모 중 최대 상금 규모다. 수상작으로 호명되지는 못했으나 <명선전>, <개기월식>, <독>, <반백의 둥지>, <초록의 찬란>, <아버지의 집>, <하…그림자가 없다> 등 뛰어난 신작 희곡들이 한국 연극계의 무대를 새로이 빛낼 찬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편 국립극단 창작희곡 현상 공모는 1957년 시작되어 <딸들, 연애 자유를 구가하다>(1957, 하유상 작), <만선>(1964, 천승세 작), <가족>(1957, 이용찬 작) 등 국립극단의 주요 레퍼토리 작품을 발굴해 왔다. 당시 연극계에서 신인 극작가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현상 공모 외 창작극 개발 방식을 다양화하면서 2008년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5년 만에 부활한 국립극단 창작희곡 현상 공모는 올해도 2회차 접수를 진행하며 그 발걸음을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