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이 2025년 관객을 만날 12개의 작품을 발표한다. 올해 4월 취임한 박정희 단장 겸 예술감독과 함께 지난 1년간 작품 발굴과 기획 과정을 거친 12개의 공연이 청청한 모습으로 관객과 마주할 출발선에 섰다.
국립극단은 라인업 공개와 함께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개년의 작품 구성을 대표하는 표제도 함께 발표한다. 표제 “현존과 좌표”는 연극은 인간 삶에 대한 서사이자 존재의 재현이라는 화두로 인간으로서의 연극과, 또 연극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상호 관계성을 좌표계에 빗대었다. 특히 2025년은 인간의 존재 양식에 집중해 실존과 욕망, 자유의지, 잠재된 힘 등을 담은 작품들로 꾸렸다.

국립극단 2025년 제작공연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은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정수로 불리우는 <만선>(원작 천승세, 윤색 윤미현, 연출 심재찬)이다. <만선>은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같은 해 초연(연출 최현민)되어 천승세 작가에게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의 영예를 안겼다.
<만선>에 이어 <심상기행>(가제)(원작 함세덕, 재창작·연출 이철희)이 무대에 오른다. <심상기행>(가제)의 원작은 한국 연극사를 대표하는 문인 함세덕이 극작한 희곡 『동승』이다. 유치진의 연출로 초연한 <동승>은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대회 극연좌상(현 동아연극상의 전신)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이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국립극단이 2025년에 택한 해외 신작 중 하나는 <그의 어머니 Mother of Him>(작 에반 플레이시, 연출 류주연)다. 작가 에반 플레이시(Evan Placey)의 장편 희곡 데뷔작인 <그의 어머니 Mother of Him>는 인간 본능의 직시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 갈등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는 동시에 인물의 치열한 심리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은 강간 혐의로 선고받은 아들의 범죄 형량을 감량하려는 어머니의 맹목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면서 감정적 억압과 폭발을 수차례 오가며 인간 본능에 대한 사색을 돋운다.
2023년 함부르크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Deutsches SchauSpielHaus)에서 초연(연출 카린 바이어)한 뒤 강렬하고 야심찬 작품성으로 단숨에 세계 연극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롤란트 쉼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ANTHROPOLIS Ⅰ~Ⅴ>도 새해 국립극단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립극단은 2025년 5부작 중 1부작 <프롤로그/디오니소스 Prolog/Dionysos>(작 에우리피데스·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 윤한솔)을 윤한솔 연출로, 2부작 <라이오스 Laios>(작 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 김수정)를 김수정 연출의 손에 쥐어 막 올린다. 독특한 개성과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한국 연극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두 명의 연출은 낯설고 불편한 감각을 의도적으로 가미한 작품들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사회의 면면을 드러내고 관객의 문제의식에 깊게 침투해 왔다.
또한 국립극단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극을 탄생시킬 계획으로 프로덕션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작품의 얼개를 구상한다는 목표다. 먼저 국립극단 박정희 단장 겸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로 나선 <허난설헌>(가제)(작 김연재, 연출 박정희)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1,200석 가량의 대규모 관객석을 보유한 극장을 채울 대형 작품으로, 조선시대 대표 시인으로 빛나는 문학적 재능을 지녔으나 당대의 사회적 제약 속에서 끝없이 고뇌하고 좌절하는 삶을 살아낸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해 국립예술단체 전막 유통 사업 선정작으로 국립극단과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신작 <십이야 Twelfth Night>(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임도완)가 올해는 명동예술극장에 상륙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극을 개발해 세계 연극사에 기록될 작품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목표로 기획된 <십이야 Twelfth Night>는 인류가 사랑하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원작의 배경을 조선시대 인천 앞바다로 옮겨온다.
국립극단은 ‘Pick 시리즈’로 관객의 사랑을 받은 2편의 작품 또한 무대 위에 부활시킬 예정이다. 먼저 2012년 명동예술극장 초연(연출 박정희)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비틀린 욕망과 질투, 지독하게 떨어지지 않는 파멸의 늪으로 관객을 이끌었던 <헤다 가블러 Hedda Gabler>(원작 헨리크 입센, 연출 박정희)가 다시 관객의 품에 안긴다.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유럽 전역을 넘어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공연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켜 왔다. 국내 프로무대에서는 세계 초연 이후 120년 만에 처음 소개됐는데, 그 작품이 바로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른 극이다.

2015년 초연부터 수차례 매진과 매회 기립의 신화를 써온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원작 기군상, 각색·연출 고선웅)이 10주년의 대서사시를 쓴다. 매 시즌 국립극단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티켓팅 열기로 2015년 초연부터 2023년 100회를 품은 여섯 번째 시즌까지 평균 93%의 객섬점유율을 이끈 ‘조씨고아 팬덤’은 시즌마다 극장에 발걸음하는 N차 관람으로 연극계에서는 좀처럼 보긴 드문 10주년 공연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2025년에도 초연부터 함께한 출연진과 창·제작진이 대부분 재합류해 특유의 해학과 미감을 선사하고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명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다시 한번 사로잡을 예정이다.
국립극단은 청소년극 3편으로 무대에 꿈을 담는다. 2015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첫 막을 올린 이후 전국 각지의 청소년 관객들을 만나오면서 웰메이드 청소년극에 대한 정의와 역사를 새롭게 쓴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원작 에드몽 로스탕, 각색 김태형, 연출 서충식)가 초연 이후 10주년을 맞아 명동예술극장에 입성한다. 원작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작 에드몽 로스탕)를 각색한 작품은 늘 깨지고 부딪히며 나아가는 주인공 시라노의 성장사를 빌려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고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청소년의 끝없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그려냈다. 교훈이 아닌 소통으로 청소년 관객과 호흡해 온 작품은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을 거쳐 7년 만에 다시 한번 그 낭만이 가득한 여행을 시작한다.

4년 여의 기간 동안 한국과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청소년이 만나 아시아 청소년의 이야기를 나누고 감각의 연결이라는 교류의 결과물로 무대에 서는 <섬×희곡×집>(가제)(작 나수민·허선혜, 연출 윤혜진)은 2024년 오픈리허설을 거쳐 2025년에는 더 많은 관객에게 세계와 경험의 확장을 선사할 예정이다.
응축된 에너지로 시공간을 재창조하는 공연도 청소년 관객을 만난다. <위험한 놀이터>(가제)(연출 김경희)는 몸과 소리, 공간을 주요 테마로 내면의 우주적 확장을 모색한다. 청소년과 예술가가 만나 서로의 세계를 탐색하고 창의를 발현하는 [청소년예술가탐색가전]에서 탄생한 공연은 2018년부터 여러 차례의 창작 워크숍과 쇼케이스를 거쳐 완성됐다. 청소년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 낸 연극은 생동하는 청소년의 격렬한 감각을 오롯이 담아낼 예정이다.
국립극단과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지속해서 발전시켜 온 연구개발 프로젝트 [청소년극 창작벨트]와 [더 어린 관객을 위한 극장]도 이어간다. 특히 36개월 이하 영유아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쇼케이스, 관객이자 창작자로 장애 영유아와 가족이 함께 참여한 트라이아웃 공연 등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더 어린 관객을 위한 극장]은 2025년에도 2편의 쇼케이스를 선보인다. 아이들의 탐색 능력과 자기표현 능력을 증진하는 유희적 경험으로 꾸려진 공연은 ‘말하고, 만져보고, 울어도 괜찮은 우리 아이의 첫 극장’을 선물한다.
2025년에도 국립극단은 국내 연극 레퍼토리의 성장과 연극계 활성화를 돕고 전 국민 문화향유를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지난 8월 첫 선보인 [기획초청 Pick크닉]이 새해에도 명동예술극장을 빛나는 공연의 향연들로 채운다. 국립극단이 직접 선정한 민간 극단의 우수작들을 초청하여 관객 앞에 다시 소개함으로써 창작신작의 레퍼토리화를 돕고 한국 연극의 세계화를 견인할 수 있는 대표작의 탄생을 함께한다는 취지다.
2025년 상반기 초청작으로는 극단 앤드씨어터의 <유원>(원작 백온유, 각색 신재훈, 연출 전윤환),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원작 모리스 메테를링크, 각색 양손프로젝트, 연출 박지혜)와 <전락>(원작 알베르 카뮈, 각색·연출 손상규)이 선정됐다. 국립극단은 [기획초청 Pick크닉]에 함께하는 민간 극단과 제작사에 공연 제작비 및 홍보마케팅을 지원하고 명동예술극장의 공연장 제반 시설과 무대 사용을 제공한다. 민간 극단에 더불어 국공립기관과의 우수 작품 교류도 이어간다. 올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과 공동기획으로 초연 당시 리빙 시어터(The Living Theatre)의 첫 내한 공연으로 큰 주목을 받은 <로제타 Rosetta>(작·연출 김정한)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수한 현대일본희곡과 중국희곡도 국립극단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립극단은 오는 2월과 9월에 각각 [제12회 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 [제8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개막한다. 한-일, 한-중 연극 문화교류를 목표로 시작된 낭독공연은, 이웃 나라의 동시대적 사유와 담론을 적시하는 희곡을 한국 창작진들의 시각을 더한 연출로 담아내면서 국내 연극계의 레퍼토리 다양성을 넓히는데 일조해 왔다. 부대행사로 심포지엄을 마련해 동시대 주제를 아우르며 각 나라의 연극인들이 활발히 소통할 예정이다.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극장’, ‘언제 어디서나 연극을 만나는 내 손안의 극장’을 표방하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넘어 관객이 극장과 만나는 세계를 확장해 온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이 2025년 <햄릿>, <십이야> 등 관객 선호도와 대중성 높은 신작을 개막한다.
국립극단은 독창적인 예술 프로덕션, 새로운 연극 언어의 개발, 공연 미학의 확대를 목표로 [창작트랙 180°]를 진행한다. 기존 연극의 서사구조 또는 극장 형식의 파괴를 시도하는 창작자를 참여 예술가로 선정해 연극 생태계의 전형을 타파하고 다양화를 꾀하고자 하는 시도다. 최종 결과물로서 공연화에 중점을 두기보다 과정 중심의 연극 만들기로, 다양한 연극적 실험을 시도하고 작품의 초석을 놓는다. 프로젝트에는 상하반기 각각 1명씩, 연내 총 2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적 창작 동력을 가지고 연극 현장에 창조적 자극을 확산시킬 수 있는 예술가를 현장 조사와 인터뷰 등으로 선정할 예정이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도 2회차를 맞는다. 우수 창작 희곡 개발로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를 쓸 연극 제작을 이끌고 동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보석같은 희곡의 발굴을 위해 올해 15년 만에 새롭게 부활한 국립극단 현상 희곡 공모로 30일 첫 시상식을 가진다. 대상작 『역행기(逆⾏記)』(작 김주희)는 “이야기가 요구하는 상상적 공간의 스케일 그리고 이야기를 추동하는 주제의 다층성을 감안할 때 대작이라 부를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으며 2025년 낭독회를 거쳐 이듬해 명동예술극장에서 본공연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2회차 공모 접수도 예정되어 있다. 대상 1편 3천만원, 우수상 2편 1천만원의 총 5천만원 상금 규모로, 국내 현존하는 미발표 희곡 공모 중 최대 상금이다. 중·대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90분 이상의 장막 희곡을 대상으로 신진 작가와 기성 작가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공동창작 형식도 가능하다.
2012년 시작해 연극 창작을 위한 사유와 성찰을 나눴던 아카데미 프로그램 [월요일 오후 다섯 시](가제)를 재개한다. 철학, 미학, 사회학, 연극학을 넘나들며 연출가, 극작가, 배우, 제작진 등 현장 연극계 창작진뿐만 아니라 인문학 또는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 있는 모든 참가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행할 예정이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연극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서사와 탐구를 오롯이 무대 위에 담아내는 빛나는 결정체다. 연극이 고민해야 하는 근본적 화두인 인간을 조망하고 인간을 비추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무대 위에 그리고자 한다. 그 결실로 국립극단은 한국 연극의 발전을 성취하고 인류 모두의 통용적인 이야기로 세계 무대에 깊은 공감과 전율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