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소멸한 자리, 남기를 선택한 존재들 <전기 없는 마을>! 소멸의 순간이 온다면, 다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전기 없는 마을> 포스터 |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은 창작 신작 <전기 없는 마을>을 7월 11일부터 8월 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김연민 연출이 1년간 개발하여 선보이는 이 작품은, 과학 문명 그 후의 소멸해가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6년 한국연출가협회 신진연출가전 연출상, 2022년 젊은연출가상을 수상하며 <이카이노의 눈>, <능길삼촌>, <연꽃정원> 등 지역 및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해석하는 작업으로 꾸준히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구축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공간’에 주목했다.

부여된 임무에 따라 소멸이 예상되는 마을의 전기망을 끊으러 다니는 첫 번째 이야기 속 재이와 이든.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는 충격적이게도, 자신들의 전기를 끊어버리라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두 번째 이야기 속 기준과 재하. 재하는 디지털 트윈에 이스터 에그로 만들어둔 인물이 허망하게 소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연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세 번째 이야기, 소멸 직전의 마을에 사는 영란과 그의 곁을 지키는 원식. 젊은 날에 자신의 아이를 잃어야 했던 영란은 그 아이의 커 가는 모습을 보고자 DNA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존재를 만든다. 영란의 역사와 상처에서 시작된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갈까.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3개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며 마치 영화 <트루먼쇼>를 연상케 한다. 한때는 많은 사람이 오가며 융성했던 도시가 인구 감소로 소멸 직전의 시골이 되어버린 공간에서, 자연은 소리 없이 인간이 떠난 자리를 덮어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고, 모종의 이유로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이는 전기가 끊겨 마을에 남아있던 기계들마저 사라지는 순간에도 떠날 생각이 없다.

맞물려 들어가는 3개의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점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끼며, 소멸은 ‘끝’ 이 아닌 연결과 순환으로 이어진다는 대전제를 마주한다. 인간이 소멸한 도시는 문명의 이기가 없던 원시 자연의 상태로 착실하게 채워지고, 우주의 관점에서 그것은 순환의 이치다.

 특히 김연민 작·연출은 이번 작품을 바깥에서 산책하며 메모장만을 이용해서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품 개발을 위한 기술 워크숍 중 알게 된 라이다 센서를 이용한 3D 공간기록의 원리를 글쓰기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다. 3D 공간 기록 시, 광학 센서로 공간의 데이터 값을 가진 무수한 점(데이터 포인트)들을 기록하여 하나로 조합하면 완성된 공간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마치 ‘원자’와 같은 수많은 메모들은 최종적인 합체와 분할 작업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또, 김연민은 작품 개발 리서치 과정에서 뉴턴의 제3법칙,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원리, 열역학 제2법칙 등 다양한 과학 개념을 면밀히 탐구하여 이를 우리가 사는 세상 및 삶과 연결해서 철학적으로 적용한 뒤 작품의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제3법칙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 던지는 모든 행동, 말, 생각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철학적 이치를, ‘어떤 시스템의 특정한 물리적 속성(위치, 운동량, 에너지 등)은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는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원리는 ’우리의 위치와 운명은 어떤 확정된 궤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극의 대전제에, ’이 세상은 계속 무질서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은 ’우리는 계속해서 삶의 질서를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것은 변화하고 붕괴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된다‘는 주제 의식에 영리하게 녹여냈다.

극의 중심 서사를 이끄는 영란 역할에는 1981년 데뷔 후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굵직한 연극상을 꾸준히 수상하고 최근에는 <원더풀 월드>, <오징어게임 시즌2> 등 매체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강애심 배우가 43년 연기 내공으로 열연한다. 3년 연속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활동하며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기도 한 중견 배우 윤성원과 <욘 John>, <컬렉션>, <굿닥터> 등 굵직한 연극 경력을 지닌 중견 배우 정원조가 무게감을 더한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이다혜, 최하윤, 홍선우는 각자의 개성이 담긴 뚜렷한 색채로 인간 같은 비인간적 존재를 연기하며 다채로움을 더한다.

 김연민 연출은 “<전기 없는 마을>은 ’전기가 사라지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전기저장기술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임에도 발전속도가 더딜만큼 쉽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전기가 권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전기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일부 도시는 점차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간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효율화를 위해 인구소멸 도시의 전기를 끊고 큰 도시에 모여 사는 가운데 여전히 ’전기 없는 마을‘에 남아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다.”라고 작품 배경을 전했다.

 예매는 오는 14일 오후 2시부터 국립극단 홈페이지와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며, 국립극단 유료회원은 이틀 먼저 선예매에 참여할 수 있다(국립극단 홈페이지 한정). 역대 [창작공감: 연출] 공연의 유료 티켓 실물 소지자에게는 1인 2매까지 30% 할인 혜택이 있다. 7월 21일 공연 종료 후에는 김연민 작·연출과 배우 6인이 모두 참여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