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년 동안 배에서 내리지 않은 남자가 있다. 상상이 되는가? 미국으로 이민자를 실어 나르는 ‘버지니아 호’에서 발견되어 선원들 사이에서 자란 남자는 어떠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그의 이름은 ‘노베첸토’다.
음악극 ‘노베첸토’는 이탈리아 거장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이 동일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달리, 음악극 ‘노베첸토’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열한 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또한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진 것처럼, 이 극은 재즈 트리오가 추가되어 더욱 흡인력 있는 음악극으로 재탄생되었다.
1900년 1월 1일에 발견되어 ‘1900(노베첸토)’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극은 그의 기구한 삶과 달리, 관객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다가온다.
첫 번째 친절함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보통 막이 오르면 ‘극이 시작된다’는 약속이 되어있지만, 사람에 따라 몰입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벽을 허물 수 있도록 음악극 ‘노베첸토’는 극과 객석 사이를 오가는 화자, 팀 투니를 내세워 준비 시간을 준다. 스트레칭할 겸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의 얼굴을 확인해 보라던가, 객석에 말을 걸어 무대 사이와의 심리적 간격을 줄이는 데 노력한다. 또한 ‘빵 터지는’ 말장난으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말 그대로 무장 해제시켜 긴장을 없앤다. 이제 관객들은 팀 투니의 말에 자연스럽게 귀가 열릴 수밖에 없다. 노베첸토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토록 정성스러운 예열이라니, 사정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두 번째 친절함은 음악이었다. 재즈 트리오로 구성된 음악들은 ‘음악극’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적재적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한 열정이 넘치면서도 완벽한 피아노 연주는 라이브로, 그것도 그랜드 피아노로 들려주었다. 유명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연주는 객석의 열띤 호응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베첸토와 재즈의 창시자로 알려진 ‘젤리 롤 모턴’의 피아노 배틀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마치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눈앞에 있듯 팀 투니의 소개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선율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노베첸토의 마지막 배틀이 끝나자, 객석은 극 내의 묘사처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세 번째 친절함이자 인상적인 요소는 무대 장치였다. 실제 극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생경했다, 고 정정한다. 왜냐하면 커튼 위치에,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진 기다란 철봉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용도를 알기 어려웠던 이 ‘철봉 커튼’은 천천히 귓가로 밀려 들어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걷히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안내한다. 버지니아 호에 승선했노라고. 또한 돌풍을 만나 배가 출렁이는 장면에서는 철봉들이 서로 부딪쳐 극의 긴장감을 더하기도 하는 이 구조물은, 동시에 노베첸토의 전부라 여겨지는 피아노 현처럼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무대 자체가 피아노라는 악기의 내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노베첸토의 인생을 말하는 이 극에 완벽히 들어맞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친절함은 질문들이다. 극의 시작에 화자는 음악극 ‘노베첸토’를 보러 온 관객이자 동시에 버지니아 호에 승선해 재즈 음악을 듣는 승객인 우리에게 묻는다. “여기에 왜, 어떤 목적으로 오나요?” 바로 이어 버지니아 호에 탑승한 ‘승객’을 묘사하기에 우리는 화자가 이끄는 대로 주변 ‘승객’을 인지하게 된다.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이 유려한 마법은 극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필자 또한 공연이 끝나고도 며칠을 고뇌했다. ‘대체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극을 보게 되는 당신 또한 그러할 것이고, 답을 찾으려 노력함으로써 사색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늘 우리에게 주어진 미스터리이자 숙제이다. 그의 인생을 통해 받은 울림이 이 불가해한 문제를 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이것이 필자가 음악극 ‘노베첸토’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